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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부

중세 농노의 생활

by Sueña. 해나 2021.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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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농노의 생활을 알아보기 전에 ‘장원’의 구조를 알아보고자 한다. 봉건제에서 주군은 봉신에게 토지를 수여하는데 그 토지가 ‘장원’이다. 봉신은 장원의 ‘영주’가 되어 다스렸다. 가끔 미드에서 보면 신하가 자신의 영주나 군주에게 ‘my lord’ 라는 표현을 한다. 그럴때 영주를 확인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원’

장원에는 영주의 성(영주관)이 있고, 중세의 정신적 세계를 지배했던 교회가 있다. 그 외 일상 생활에 필요한 대장간, 제분소 등이 있는데 의무적으로 사용하고 사용료를 지불해야 했다. 토지를 보면 경작지, 목초지, 삼림, 황무지, 공동 방목지 등이 있다. 경작지는 영주 직영지와 농민 보유지가 혼재되어 있다. 또한 경작지는 삼포제에 의해 경작되었다. 삼포제란 춘경지, 추경지, 휴경지로 나눠 농사를 짓는 방법인데 중세 시대에는 비료 등이 없었기 때문에 땅의 지력이 약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돌려가며 농사를 지었다.

농노는 농민과 노예가 합쳐진 것이라 볼 수 있다. 고대의 노예와 다른 점은 혼인할 수 있었고, 농지 혹은 토지를 보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예와 비슷한 점을 보자면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었고 영주의 허락 없이 장원을 떠날 수 없었다. 농민은 영주에게 지대를 납부해야 했는데 일주일에 2~3일간 영주를 위한 노동을 해야했다.  농노는 영주의 시설을 의무로 이용해야 했고 사용료를 지불해야 했다. 그 외 세금으로는 인두세, 혼인세, 사망세가 있었다. 독일에서는 중세의 농노를 ‘뿔 없는 소’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마 소처럼 매일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료를 통해 중세 농노 ‘보도’의 하루를 보자.

보도는 아내와 세 자녀가 있었다. 그는 경작지와 목초지가 있는 약간의 농지와 몇 그루의 포도나무를 갖고 있었다. (중략) 보도는 일찍 일어난다. (중략) 영주 밭에서 쟁기질하는 날이라서 황소를 데리고 가는데, 어린 아들이 옆에서 막대기로 소를 몬다. (중략) 보도의 아내도 바쁘기는 매한가지다. 오늘은 살찐 영계 한 마리와 달걀 다섯 개를 지대로 바치는 날이다.
- 아일린 파워, <중세의 사람들> -
출처 : 15개정 역사교과서 동아출판 85쪽


농민과 노예의 중간 단계인 농노에 대해 알아보았다. 중세시대의 나름 주역인 영주, 군주, 기사, 교회 외에 농노도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 참고 사이트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942228&cid=47323&categoryId=47323

장원

중세 서유럽에서 영주의 토지와 농노로 구성된 자급 자족적인 경제 체제 또는 봉건 사회의 경제 단위를 이루는 영주의 토지 소유 형태나 그 토지를 말한다. 이는 봉건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

m.terms.naver.com

* 참고문헌
15개정 동아출판 중학 역사 교과서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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