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서 애로호사건이 일어난 것 까지 확인을 했어요. 이제 천진조약(톈진조약), 북경조약이 맺어지는 과정으로 아편전쟁은 마치려 해요.
청나라가 약해진 것을 확인한 다른 열강들이 그간 요구했던 조약 개정을 요구하며 나타났어요. 그간 청나라는 이런 저런 이유로 더 불평등해지는 조약을 개정하지 않았거든요. 청나라가 약해지자 개정이 가능하다 생각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청나라는 직접 열강들을 마주하지 않고 근처에 살고 있는 러시아에게 중간 역할을 요청해요. 그리고 천진에서 조약을 맺어요. 그것이 천진조약이에요. 러시아는 이것을 알선한 대가로 청나라로부터 연해주를 할양받아요. 그래서 현재 블라디보스토크가 러시아 땅이에요.
4개국과 맺어진 천진조약의 주요 내용은 외국공사의
북경주재, 양자강 유역과 북부 지역 및 기타 지역의 10개항 개항, 내지에서의 여행, 통상, 포교의 자유, 영사재판권 확대, 양자강 및 통상항으로의 군함진입권, 배상금 등이었다.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289p)
영국은 천진조약의 비준을 북경에서 하려고 추진했으나 청 조정은 반대했어요. 외국 군대가 수도까지 들어오는 것이 꺼려졌기 때문이죠. 영국은 조금 더 강하게 밀고니가 근처까지 갔는데 청조의 경고 사격 및 포격을 받아 무너지고 말았어요. 영국에서는 청나라가 조약을 파기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공사의 북경 주재가 군대의 주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에 어긴 것은 아니에요. 영국은 설욕을 갚겠자며 북경을 공격하여 함락시켰어요.
수도인 북경의 함락에 청나라는 큰 위기에 빠졌고 영국 프랑스 연합군은 약탈, 방화를 일삼았어요. 청나라는 결국 1860년 북경조약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해요. 청나라 입장에서 치욕적이고 굴욕적인 사건이었어요. 북경조약은 천진조약과 거의 내용이 같아요.
북경조약(1860)
천진을 개항장으로 추가하고 중국인 노동자(쿨리)의 이민을 허가하며 구룡반도 남쪽의 구룡사를 영국에 할양한다는 내용이었다. 또 과거에 몰수한 가톨릭 교회당을 상환하여 각 성의 토지를 임대하거나 구매해 교회를 건립할 수 있게 하고 배상금을 증액한다는 것이었다. 청조가 그토록 꺼려하던 외국 공사의 북경주재가 확고한 사실로 굳어져 북경에 공사관이 설립되었다. 1861년애는 외국과의 외교를 전담할 관청으로 총리아문이 설치 되었다. ( 중략 ) 또한 외국 선교사가 자유로이 교회를 설립할 수 있게 되고 토지 조매권(토지를 빌리거나 매입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면서 중국 내륙 지역에 중국인 신자가 증가하였다.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290p)
1, 2차 중영전쟁이 패배로 끝나면서 청나라의 위신이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또한 중국 내에서는 반제국주의를 외치는 세력이 싹트게 되었고, 중국을 이긴 혹은 북경을 함락시킨 서양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이시각 조선은 🧐
1860년에 조선은 철종시기 였으며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했어요.
* 참고문헌을 밝혀둡니다. 문제시 삭제하겠습니다.
- 참고문헌 : 신성곤, 윤혜영, 한국인을위한중국사, 서해문집, 2004, 289-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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