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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역사45

비잔티움 제국(2) 지난 포스팅에서는 비잔티움의 유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번 포스팅은 비잔티움제국의 발전 과정을 알아보아야겠다.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는 콘스탄티노폴리스다. 현재 터키의 이스탄불이다. 이 지역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곳에 위치해 있다. 역사에서 공통점은 지정학적으로 이러한 위치에 있는 국가들은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특히 ‘중개 혹은 중계 무역’의 중심지로서 성행한다. 역시나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역시 동서 무역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비잔티움 제국의 전성기 황제는 6세기 중엽에 유스티니아누스다. 그는 지중해 연안의 옛 로마 영토의 대부분을 회복했다. 민족이동의 혼란이 어느 정도 안정도니 6세기에 마지막으로 과거의 로마제국의 재건과 그 전통의 계승을 시도한 황제가 유스티니아누스(527-56.. 2021. 6. 8.
비잔티움 제국(1) - 제국 명칭의 유래 우리는 로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비잔티움’ 제국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비잔티움 제국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로마 제국이 말기에 가서 휘청거릴 때 이를 재건하기 위해 노력한 두 명의 황제가 있었다. 바로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와 ‘콘스탄티누스(306-337)’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제국을 분할통치를 시작하였다. 두 사람의 황제와 그 밑에 부황제를 두었다. 이를 4제통치라고 한다. 아마 이때 부터 동서로마가 나뉘게 된게 아닐까 생각된다. 로마제국이 멸망했다고 했을 때는 보통 ‘서로마’제국의 몰락을 의미한다. 비잔티움이라는 명칭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존재했다. 그리스의 옛 식민지였던 비잔티움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라는 수도를 세웠다. 아래의 지도에서 ‘비잔.. 2021. 6. 7.
중세 농노의 생활 중세 농노의 생활을 알아보기 전에 ‘장원’의 구조를 알아보고자 한다. 봉건제에서 주군은 봉신에게 토지를 수여하는데 그 토지가 ‘장원’이다. 봉신은 장원의 ‘영주’가 되어 다스렸다. 가끔 미드에서 보면 신하가 자신의 영주나 군주에게 ‘my lord’ 라는 표현을 한다. 그럴때 영주를 확인할 수 있다. 장원에는 영주의 성(영주관)이 있고, 중세의 정신적 세계를 지배했던 교회가 있다. 그 외 일상 생활에 필요한 대장간, 제분소 등이 있는데 의무적으로 사용하고 사용료를 지불해야 했다. 토지를 보면 경작지, 목초지, 삼림, 황무지, 공동 방목지 등이 있다. 경작지는 영주 직영지와 농민 보유지가 혼재되어 있다. 또한 경작지는 삼포제에 의해 경작되었다. 삼포제란 춘경지, 추경지, 휴경지로 나눠 농사를 짓는 방법인데 .. 2021. 6. 3.
중세 농노의 기원 중세 장원의 농민은 대부분이 농노였다. 그렇다면 농노는 무엇일까? 익숙하지 않은 명칭이다. 농민일까 아니면 노예일까? 서양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정치가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 중에 하나는 일반 시민들의 생활을 돌봐준 노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사회는 노예가 바탕이 된 사회다. 아테네나 스파르타 모두 노예가 일반 생활을 뒷받침 해주었다. 아테네 같은 경우는 노예 덕에 민주정치를 해나갈 수 있는 바탕이 되었고, 스파르타는 헤일로타이(스파르타 노예)덕에 군사정치를 꾸준히 할 수 있었다. 중세의 농노는 농민과 노예가 합쳐진 의미다. 농노의 기원은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로 올라간다. 황제(디오클레티아누스)는 미리 예산 총액을 결정하여 이를 관할 속주에 할당하고, 속주는 이를 다시 각 도시에 할당하였다. 도시.. 2021.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