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SMALL 중국사4 2차 중영전쟁 배경 애로호사건 청나라와 영국이 남경(난징)조약을 맺고 난 이후 어떻게 상황이 변했을까요? 영국이 바라는 바를 모두 얻었을까요? 제1차 중영전쟁에서의 승리 이후 영국은 자국의 공업제품 상당량이 중국시장으로 팔려 나갈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남경조약이 맺어진 후 몇년간을 제외하고는 수출이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특히 영국의 면제품의 경우는 수출이 매우 부진했다. 오히려 아편 무역을 제외하고는 중국의 차, 생사 수입량이 늘어나 영국의 수입초과가 이루어졌다.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286p) 앞의 포스팅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청나라 자체는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는 나라였어요. 영국이 남경조약으로 다섯개의 항구(광주, 상해, 영파, 복주, 하문)를 개항했어도 큰 영향일 미치지 않았던거에요. 또한 청나라 영토 자체가 넓기도 했고 .. 2021. 5. 28. 아편전쟁(1차 중영전쟁) 이번 포스팅에서는 본격적으로 아편전쟁의 내용과 이후 맺은 조약에 대해 알아보려 해요. 지난 포스팅에서 당시 청나라 황제였던 도광제가 엄금론자 중 한명인 임칙서를 흠차대신(황제가 특별한 명령을 내려 파견하는 대신)으로 광동에 보냈어요. 아편과 관련된 문제를 하루 빨리 처리하길 원했어요. 광동에 간 흠차대신 임칙서는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임칙서는 아편과 관련된 문제를 철저히 단속하기로 유명했던 사람이에요. 그랬기에 황제가 흠차대신으로 임명을 했던거 같아요. 1839년 3월에 광동에 도착한 후 임칙서는 우선 중국인 아편 관련자를 체포하고 아편을 몰수했다. 다음으로는 외국인들에게 서약서를 받아내도록 공행 상인들에게 명령했다. ( 중략 ) 영국 무역 감독관 찰스 얼리어트가 외국 상인들의 아편을 거두어 제출했고 그.. 2021. 5. 25. 아편전쟁의 배경(1) 자려고 누웠는데 남편이 아편전쟁에 대해 물었어요. 아는대로 설명해주고 나니 부족했던것들이 떠올라 급하게 전공책을 펴고 보았네요. 우리가 아편전쟁으로 알고 있는 전쟁의 다른 이름은 중영전쟁이에요. 중국과 영국이 전쟁을 했기 때문이죠. 전쟁의 매개가 되었던 것이 ‘아편’이기 때문에 아편전쟁으로 부르고 있어요. 아편전쟁은 1차와 2차로 나뉘는데요. 오늘 글에서는 아편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살펴볼게요. 당시 중국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다스리고 있던 시기에요. 청나라는 풍족한 물자를 바탕으로 자급자족을 하며 지내고있었어요.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기는 하지만 굳이 필요해서 하기보다는 ‘책봉과 조공’의 관계에서 하고 있었어요. 청나라의 태평성세로 알려진 시기가 있어요. 바로 강옹건시기에요. 강희제, 옹정제, .. 2021. 5. 23. 원나라에 방문한 외국인들 여러분 혹시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를 들어보셨을까요? 제가 고등학교 시잘 세계사를 배울 때에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는 들어보았어요. 팍스 로마나는 ‘로마의 평화’에요. 이는 아우구스투스가 제정을 성립한 이후로 로마 제국에 평화가 200년간 지속되었기에 그렇게 불렀어요. 그렇다면 팍스 몽골리카는 어느 시기를 의미할까요? 바로 몽골 제국이 출현한 13세기부터 14세기에요! ‘팍스 몽골리카’라는 말은 몽골의 정복에 의해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 지역이 정치적으로 단일한 제국 영역 안에 편입되고, 이에 따라 정치, 경제, 문화적인 교류가 광범위하고 긴밀하게 일어난 역사적 현상을 지칭한다.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156p) 몽골제국은 수많은 정복 전쟁을 통해 동쪽의 만주, 서쪽의 폴란.. 2021. 5. 2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