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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역사3

비잔티움 제국(3) 지난 포스팅에서는 비잔티움 제국 전성기 황제인 ‘유스티니아누스’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정치, 사회, 문화를 알아보고 마무리 하려한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사후 비잔티움은 주변의 국가로부터 외침을 당했다. 특히 동쪽의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공격으로 시리아와 이집트를 상실하는 일도 발생했다. 이쯤 등장한 헤라클리우스 황제(610-641)는 외침에 대비해야만 했다. 그는 군관구제와 둔전병제를 실시하였다. 군관구제 : 제국을 31개의 군관구로 나누고 황제가 직접 임명한 사령관에게 군사권, 행정권, 사법권을 부여하였다. 둔전병제 : 농민들에게 군역에 대한 대가로 토지를 주고 군역을 계속한다는 조건으로 토지를 상속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출처 : 15개정 천재교과서 세계사 128쪽 외침에 대비하.. 2021. 6. 10.
비잔티움 제국(2) 지난 포스팅에서는 비잔티움의 유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번 포스팅은 비잔티움제국의 발전 과정을 알아보아야겠다.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는 콘스탄티노폴리스다. 현재 터키의 이스탄불이다. 이 지역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곳에 위치해 있다. 역사에서 공통점은 지정학적으로 이러한 위치에 있는 국가들은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특히 ‘중개 혹은 중계 무역’의 중심지로서 성행한다. 역시나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역시 동서 무역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비잔티움 제국의 전성기 황제는 6세기 중엽에 유스티니아누스다. 그는 지중해 연안의 옛 로마 영토의 대부분을 회복했다. 민족이동의 혼란이 어느 정도 안정도니 6세기에 마지막으로 과거의 로마제국의 재건과 그 전통의 계승을 시도한 황제가 유스티니아누스(527-56.. 2021. 6. 8.
프랑크 왕국의 발전과 분열 지난번 포스팅에서 카롤루스 마르텔이 투르 푸아티에 전투에서 이슬람 세력을 물리쳤다고 했어요. 이슬람 세력을 물리쳐준 영향으로 교회와 돈독해졌어요. 카롤루스 마르텔에게는 피핀이라는 아들이 있어요. 피핀은 유약해진 메로베우스 왕조를 무너뜨리고 ‘카롤루스 왕조’를 세웠어요. 피핀은 카롤루스 마르텔 보다 교회 세력과 더 돈독하게 지냈어요. 사실 왕조를 개창할 때도 로마 교회가 지지해주었기에 수월하게 진행되었어요. 피핀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이탈리아 중부의 라벤나 지역을 롬바르드족으로부터 빼앗아서 교회 및 교황에게 기증하였고 그곳이 교황령의 시초가 되었어요. 피핀 다음으로 카롤루스 대제가 왕위에 올랐어요. 그리고 그 시기가 영토확장, 문예 부흥 등으로 프랑크 왕국의 전성기였어요. 프랑크왕국의 수도는 아헨이었어요... 2021.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