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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1역사7

중세 농노의 생활 중세 농노의 생활을 알아보기 전에 ‘장원’의 구조를 알아보고자 한다. 봉건제에서 주군은 봉신에게 토지를 수여하는데 그 토지가 ‘장원’이다. 봉신은 장원의 ‘영주’가 되어 다스렸다. 가끔 미드에서 보면 신하가 자신의 영주나 군주에게 ‘my lord’ 라는 표현을 한다. 그럴때 영주를 확인할 수 있다. 장원에는 영주의 성(영주관)이 있고, 중세의 정신적 세계를 지배했던 교회가 있다. 그 외 일상 생활에 필요한 대장간, 제분소 등이 있는데 의무적으로 사용하고 사용료를 지불해야 했다. 토지를 보면 경작지, 목초지, 삼림, 황무지, 공동 방목지 등이 있다. 경작지는 영주 직영지와 농민 보유지가 혼재되어 있다. 또한 경작지는 삼포제에 의해 경작되었다. 삼포제란 춘경지, 추경지, 휴경지로 나눠 농사를 짓는 방법인데 .. 2021. 6. 3.
중세 농노의 기원 중세 장원의 농민은 대부분이 농노였다. 그렇다면 농노는 무엇일까? 익숙하지 않은 명칭이다. 농민일까 아니면 노예일까? 서양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정치가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 중에 하나는 일반 시민들의 생활을 돌봐준 노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사회는 노예가 바탕이 된 사회다. 아테네나 스파르타 모두 노예가 일반 생활을 뒷받침 해주었다. 아테네 같은 경우는 노예 덕에 민주정치를 해나갈 수 있는 바탕이 되었고, 스파르타는 헤일로타이(스파르타 노예)덕에 군사정치를 꾸준히 할 수 있었다. 중세의 농노는 농민과 노예가 합쳐진 의미다. 농노의 기원은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로 올라간다. 황제(디오클레티아누스)는 미리 예산 총액을 결정하여 이를 관할 속주에 할당하고, 속주는 이를 다시 각 도시에 할당하였다. 도시.. 2021. 6. 2.
중세 봉건제 중세의 봉건제는 두가지 맥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정치적 입장에서 봉건제, 경제적 입장에서 장원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 둘이 함께 있을 때 중세를 이해할 수 있다. 9세기에 프랑크 왕국을 둘러싸고 대내외적으로 위기였다. 대내적으로는 두 번의 조약을 통해 세개의 국가로 나뉘었고, 대외적으로 이슬람 세력의 확산, 마자르족과 노르만족의 침입 등이었다.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다. 국가에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이에 사람들이 스스로 무장을 시작했다. 기사가 되거나, 기사의 보호를 받거나, 부유한 사람의 보호 아래 들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세 ‘봉건제’가 생겨났다. 봉건제는 권력을 가진 주군이 자신에게 충성하는 신하에게 토지를 수여하는 제도이다. 주군과 신하의 관계를 ‘주종관계’라고 한다... 2021.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