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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같이해요3

중세 농노의 기원 중세 장원의 농민은 대부분이 농노였다. 그렇다면 농노는 무엇일까? 익숙하지 않은 명칭이다. 농민일까 아니면 노예일까? 서양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정치가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 중에 하나는 일반 시민들의 생활을 돌봐준 노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사회는 노예가 바탕이 된 사회다. 아테네나 스파르타 모두 노예가 일반 생활을 뒷받침 해주었다. 아테네 같은 경우는 노예 덕에 민주정치를 해나갈 수 있는 바탕이 되었고, 스파르타는 헤일로타이(스파르타 노예)덕에 군사정치를 꾸준히 할 수 있었다. 중세의 농노는 농민과 노예가 합쳐진 의미다. 농노의 기원은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로 올라간다. 황제(디오클레티아누스)는 미리 예산 총액을 결정하여 이를 관할 속주에 할당하고, 속주는 이를 다시 각 도시에 할당하였다. 도시.. 2021. 6. 2.
중세 봉건제 중세의 봉건제는 두가지 맥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정치적 입장에서 봉건제, 경제적 입장에서 장원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 둘이 함께 있을 때 중세를 이해할 수 있다. 9세기에 프랑크 왕국을 둘러싸고 대내외적으로 위기였다. 대내적으로는 두 번의 조약을 통해 세개의 국가로 나뉘었고, 대외적으로 이슬람 세력의 확산, 마자르족과 노르만족의 침입 등이었다.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다. 국가에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이에 사람들이 스스로 무장을 시작했다. 기사가 되거나, 기사의 보호를 받거나, 부유한 사람의 보호 아래 들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세 ‘봉건제’가 생겨났다. 봉건제는 권력을 가진 주군이 자신에게 충성하는 신하에게 토지를 수여하는 제도이다. 주군과 신하의 관계를 ‘주종관계’라고 한다... 2021. 6. 1.
아편전쟁(1차 중영전쟁) 이번 포스팅에서는 본격적으로 아편전쟁의 내용과 이후 맺은 조약에 대해 알아보려 해요. 지난 포스팅에서 당시 청나라 황제였던 도광제가 엄금론자 중 한명인 임칙서를 흠차대신(황제가 특별한 명령을 내려 파견하는 대신)으로 광동에 보냈어요. 아편과 관련된 문제를 하루 빨리 처리하길 원했어요. 광동에 간 흠차대신 임칙서는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임칙서는 아편과 관련된 문제를 철저히 단속하기로 유명했던 사람이에요. 그랬기에 황제가 흠차대신으로 임명을 했던거 같아요. 1839년 3월에 광동에 도착한 후 임칙서는 우선 중국인 아편 관련자를 체포하고 아편을 몰수했다. 다음으로는 외국인들에게 서약서를 받아내도록 공행 상인들에게 명령했다. ( 중략 ) 영국 무역 감독관 찰스 얼리어트가 외국 상인들의 아편을 거두어 제출했고 그.. 2021.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