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아바스 왕조가 분열되는 모습을 보았어요. 첫째로 주변 지역에서 유일한 지도자 칼리프를 칭하는 세력이 늘었고 이를 아바스 왕조가 제어하지 못했어요. 둘째로 아바스 왕조 지방의 총독들이 독립하기 시작했어요. 이들은 정치적, 군사적 실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력이 커지니까 하나의 국가처럼 되어버렸어요. 마지막으로 이민족의 침입을 살펴보려해요.
9세기 중엽부터 많은 튀르크계 민족이 중앙아시아에서 서아시아로 이주하여 아바스 왕조의 친위대와 이슬람 지방 정권의 군대에서 활약하였다.
15개정 금성출판사 세계사 82p
당시 아바스 왕조는 튀르크계 군대로부터 칼리프가 위협을 받고 있었다. 945년 부와이 왕조가 바그다드에 입성하고 튀르크계로부터 위협을 받는 아바스왕조의 칼리프로부터 환영을 받게된다. 이후 110년 이상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는 부와이 왕조로부터 휘둘리게 된다.
10세기 중반에는 족장 셀주크가 이끄는 튀르크(셀주크튀르크)가 카스피해 부근해서 일어나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세력을 확대하였다.
15개정 금성출판사 세계사 82p
셀주크튀르크는 바그다드에 들어가 부와이 왕조를 물리치고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로부터 ‘술탄’이라는 칭호를 받습니다. 술탄이란 이슬람 세계의 정치 지도자를 의미한다. 칼리프가 종교 지도자인 것을 생각하며 술탄을 생각해보자.
아바스 왕조 자체가 다른 민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법이 문제다. 결국은 자신을 괴롭히는 이민족만을 교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셀주크튀르크를 주목해야 한다. 아바스 왕조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유럽사에서도 증장하기 때문이다. 셀주크튀르크는 예루살렘쪽으로 진출하여 비잔티움 제국과 만나게 되었다. 많은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통행을 금지하였다. 이에 비잔티움 황제가 서로마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십자군 전쟁이 시작된다.
십자군 전쟁으로 셀주크튀르크는 약화되었고, 왕실의 내분까지 겹쳐 결국 분열되고 말았다. 셀주크 튀르크의 보호를 받던 아바스 왕조는 그 후에도 맹맥을 유지하다가 훌라구의 몽골군에게 멸망하였다(1258).
15개정 금성출판사 세계사 82p
*지도에서 셀주크튀르크를 찾아보세요. 또한 비잔티움과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도 보면 좋아요.
*예루살렘도 한번 찾아보세요.
*이시각 한국
1236 고려 팔만대장경 제작
*참고문헌(문제시 삭제하겠습니다)
15개정 금성출판사 세계사 82p
15개정 금성출판사 세계사 82p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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