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세계- 우마이야왕조의 발전과 쇠퇴
지난 포스팅에서 정통칼리프시대(632-661)와 4대 칼리프 알리가 살해된 이야기로 마무리를 했어요. 이번에는 알리가 살해된 후 이슬람 세계에 생긴 분열과 우마이야 왕조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4대 칼리프 알리가 살해된 후 칼리프를 누가 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발생했습니다. 결국은 시리아총독 무아위야가 칼리프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수니파와 시아파가 등장하게 됩니다.
수니파와 시아파
무함마드의 언행(순나)을 따르며 공동체의 통일을 중시하는 세력이 수니파로, 이슬람 세계의 다수를 차지한다. 한편 알리와 그의 후손만을 무함마드의 정통한 후계자로 여기는 세력은 시아파를 형성하였다.
(15개정 금성출판사 세계사 교과서 81p 날개)
현재까지도 이슬람 세계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골이 꽤 깊은 역사가 이때부터 시작이 되었네요.
우마이야 왕조에(661-750) 대해서 더욱 살펴보면 수도를 다마스쿠스에 두고 현재 스페인지역인 이베리아 반도까지 진출을 하게 됩니다.
우마이야 왕조는 다마스쿠스에 도읍을 정하고 세력 확장에 전념을 하였다. 그 결과 동쪽으로는 당과 접경을 이루었고, 소아시아에서는 비잔티움 제국과 접경을 이루었다.
(15개정 천재교육 세계사 교과서 87p)
지도에서 다마스쿠스를 찾아보는건 어떨까요?
이렇게 대제국을 건설한 우마이야왕조의 한계점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아랍인 우월주의였습니다. 이슬람교 자체는 신자들간에 평등을 내세웠던 종교였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믿기도 했고, 개종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랍인만이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교를 믿고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교리와 달리 차별을 행했으니 많은 사람들이 배신을 느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는 우마이야 왕조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져 다른 왕조를 등장하게 되는 계기를 만듭니다. 이는 다음 포스팅에서 만날 아바스 왕조(750-1258)입니다.
우마이야 왕조에 대해서 두 가지 정도 더 이야기 하고싶은데요. 하나는 이베리아 반도까지 진출했던 우마이야 왕조는 732년 현재 프랑스 지역인 투르-푸아티에 지역에서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당시 유럽은 프랑크 왕국의 메로베우스 왕조시기였습니다. 이 전투에 참여한 사람은 당시 재상격인 궁재 카롤루스 마르텔이었습니다. 카롤루스 마르텔은 후에 등장하는 카롤루스 왕조의 카롤루스대제(샤를마뉴)의 할아버지 입니다. 이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승리하여 이슬람세계로부터 유럽을 지켜냈다는 칭송을 받기도 합니다. 두번째로 하고싶은 이야기는 우마이야 왕조가 아바스왕조에 의해서 무너진 후 남겨진 우마이야 세력이 이베리아반도의 코르도바에 수도를 정하고 후우마이야왕조(756-1031)를 세우게 됩니다.
이슬람 세력이 점점 나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아바스왕조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 정리
- 세습칼리프시대의 문을 연 우마이야 왕조
-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
- 우마이야왕조의 아랍인우월주의
*이시각 한국
- 삼국시대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던 시기입니다.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참고문헌(문제시 삭제하겠습니다. )
1. 15개정 금성출판사 세계사 교과서 81p 날개
2. 15개정 천재교육 세계사 교과서 87p
3. 지도, 15개정 금성출판사 세계사 교과서 81p